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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신문기사에서 본 어느 의사의 실화다. (출처 : 조선일보 6월 14일자 칼럼 "우리 아니는 내 인생의 전부였어요" 발췌)
어느 병원에서 40대 중년여성이 중환자실로 실려왔다고 한다. 중년여성은 병원 계단에서 굴러서 약간의 뇌출혈이 있었다. 하지만, 검사결과 치료만 하면 큰 무리없이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환자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어서 보호자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의사는 환자를 일단 병실에 입원시키고 보호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보호자가 도착했는데, 의사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보호자는 그 환자의 노모(老母)였는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를 요청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는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
노모는 만에 하나 딸이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에 이를지언정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게다가 현 시점에서도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고 사망하게 둘 수 있겠냐는 내용의 상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의사는 노모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딸을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몹시 화가났다. '아무리 지적장애인 딸이 귀찮아도 그렇지, 사람 생명을 그렇게 쉽게...' 라고 따지고 싶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사의 생각은 노모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 바뀌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노모는 80세가 된 할머니였으며,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딸과 단둘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본인도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그리고, 살 날이 얼마 안남은 상태여서 딸보다 세상을 등지게 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평생을 지적장애를 앓는 딸을 보살피던 할머니에게, 더는 딸을 보살펴 줄 자신도 없었고 도와줄 지인도 없었다. 그렇기에 딸을 먼저 보내지 않으면, 자신도 맘 편히 생을 마감할 수 없기에 위와 같은 결심을 하게된 것이었다. 의사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그 어머니를 비난했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위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와 같은 직장인들의 인간관계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때로 함께 일하는 동료, 상사들의 작은 행동이나 말에 상처를 받는 일이 있다. 물론, 그 중에 무례한 사람도 있고, 악의를 가지고 나에게 못된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게 거슬리는 말을 했던 그 동료에게도 사실은 내가 모르는 위 이야기의 할머니와 비슷한 사연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어느 소통전문가 강사님의 강의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함께 조금씩 맞춰갈 줄 아는 매너가 필요한 이 사회에서 우리가 해야될 노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노력이란 바로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해석하려는 노력' 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동료들과 겪게되는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이 그런 말과 행동을 한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랬을까?' 라는 인내를 발휘하면 어떨까 싶다. 나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그도 보호할 수 있는데 필요한 정도의 인내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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