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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기업에 다니던 직원의 비극
얼마 전 네이버 직원이 업무상 괴로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직장인들에게 '꿈의 직장' 이라고 할 수 있는 네이버와 같은 기업에도 이런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1일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IT위원회가 성남/판교지역 IT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는데요. 그 결과, 응답자 809명의 절반에 가까운 47.%(383명)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 또는 목격한 적 있다' 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 가운데 직장내 괴롭힘에 '적극 대응했다'고 응답한 이는 67명(17.5%) 밖에 되지 않았고, 반면 316명(82.5%)이 '대응하기 어려웠다' 고 답했다고 합니다. 왠지 IT 기업하면 자유롭고, 상하수평적인 분위기를 연상하게 되었는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T업계 특성 상 동종업계 이직이 잦을 수 밖에 없는데요. (∵ 개발인력 Pool 이 판교내 인근업체로 옮겨다니므로) 이러한 IT업계 특성 상 회사내에서도 학연과 전직장 인연끼리 뭉치는 '끼리끼리 문화'가 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한 번 평판이 잘못 형성되면 옮겨가는 회사마다 낙인이 따라다니는 부작용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DNA가 만드는 기업문화
'어쩌다 한국인' 의 저자 허태균 교수는 우리나라 민족성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로 주체성과 관계주의를 꼽습니다. 주체성이란 자기의 존재감과 주장이 존중받기를 원하는 욕구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이런 성향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 뿐만아니라 심지어는 미국보다도 높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체성은 어찌보면 미국의 개인주의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자신을 중시하니까요. 그런데, 한국사람들을 개인주의와 구분짓게 만드는 특성이 바로 관계주의입니다. 이는 예를들자면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것이라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보다 '누가' 를 중시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가령, 휴일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칩니다. 일본사람의 경우 이런 상황에 전화를 받으면 "제가 나가서 무엇을 하면 되나요?" 라고 묻는데, 우리 나라 사람은 대뜸 "누가 나오라고 하는건데?"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그 일에 협조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향들은 복합적으로 섞여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도 하는데요. 주체성과 관계주의가 복합되는 경우, 흔히 말하는 파벌주의가 탄생합니다. 위에서 말한 IT 기업의 '끼리끼리' 문화같이 말입니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주체성), 이해관계가 같은 사람끼리 뭉치는 (관계주의) 현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조직문화라는 것이 우리 경영진, 조직만의 특수한 사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네이버, 카카오처럼 혁신적인 조직에서 조차 이토록 '한국적' 인 문화가 팽배한 것을 보면, 기업문화란 것이 그 회사의 일하는 방식이나 경영방침, CEO나 리더의 스타일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한국인이라는 우리 핏 속에 흐르는 DNA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 더 큰 영향력으로 작용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의 기업문화라는 형태로 회자되기도 합니다. LG, 삼성 출신의 외국인 임원들이 퇴직해서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대기업의 조직문화를 꼬집은 것이 그 예이기도 합니다.
네이버의 비극을 통해 배운 점
네이버 직원의 비극적 사건을 통해 저는 또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기업문화라는 것이 CEO나 고인물 상사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들과 같은 한국인인 조직 구성원들 모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요. 결국, 조직문화의 폐해에 대해서 구성원 모두가 예외일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물론, 그 영향력은 직급이 높은 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긴 하지만요.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 기업문화의 폐해가 우리 회사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구나, 어느 조직을 가도 언제든 부딪힐 수 있는 문제겠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우리는 이직을 결정할 때 기업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 회사는 왜 이모양이야? 이 회사는 정말 미래가 없구나' 라고 생각하기 보다, 우리나라 기업에 팽배한, 보편적인 조직문화의 폐해라고 생각을 한다면 어떨까요? 기업문화 자체를 탓함과 동시에, 그렇다면 나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할 것인가? 를 생각해 보게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직 의사결정의 결과물도 달라질 수 있고요. 만약, 그런 문화를 감내하기 싫다면 이직이 아닌 창업이나 휴식, 학업연장을 생각하게 될 수도 있고요.
기업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대세를 개인이 거스르긴 거의 불가능합니다. 회사가 아니라 니가 문제야 라고 치부하는 문화는 분명 개선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대세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 개인으로서 할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면 이직 의사결정 시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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